2017년 7월 26일 수요일

역할의 균형 맞추기

나는 내가 아닙니다.
아내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아내의 남편입니다.
명세서만 적힌 돈 없는 월급 봉투를 아내에게 내밀며 내 능력 부족으로 당신을 고생시킨다고 말하며 겸연쩍어하는 아내의 무능력한 남편입니다.
세 아이의 엄마로 힘들어하는 아내의 가사일을 도우며 내 피곤함을 감춥니다.
그래도 함께 살아주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남편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아이들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없는 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요것 조것 조잘대는 막내의 물음에 만사를 제쳐놓고 대답부터 해야하고 이제는 중학생이 된 큰놈들 때문에 뉴스 볼륨도 숨죽이며 들어야합니다.
막내의 눈 높이에 맞춰 놀이 동산도 가고 큰 놈들 학교 수행평가를 위해 자료도 찾고 답사도 가야합니다.
내 늘어진 어깨에 매달린 무거운 아이들 유치원비, 학원비가 나를 옥죄어 와서 교복도 얻어 입히며 외식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생일날 케이크 하나 꽃 한 송이 챙겨주지 못하고 초코파이에 쓰다만 몽땅 초에 촛불을 켜고 박수만 크게 치는 아빠.
나는 그들을 위해 사는 아빠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어머님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어머님의 불효자식입니다.
시골에 홀로 두고 떨어져 있으면서도 장거리 전화 한 통화에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불쌍한 아들입니다.
가까이 모시지 못하면서도 생활비도 제대로 못 부쳐드리는 불효자식입니다.
그 옛날 기름진 텃밭이 무성한 잡초밭으로 변해 기력 쇠하신 당신 모습을 느끼며 주말 한번 찾아 뵙는 것도 가족 눈치 먼저 살펴야 하는 나는 당신 얼굴 주름살만 늘게 하는 어머님의 못난 아들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40대 직장노동자입니다.
월급 받고 사는 죄목으로 마음에도 없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며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도 삼켜야합니다.
정의에 분노하는 젊은이들 감싸안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고개 끄떡이다가 고래 싸움에 내 작은 새우 등 터질까 염려하며 목소리 낮추고 움츠리며 사는 고개 숙인 40대 남자.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집에서는 직장 일을 걱정하고 직장에서는 가족 일을 염려하며 어느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엉거주춤, 어정쩡, 유야무야한 모습.
마이너스 통장은 한계로 치닫고 월급날은 저 만큼 먼데 돈 쓸 곳은 늘어만 갑니다.
포장마차 속에서 한 잔 술을 걸치다가 뒷호주머니 카드만 많은 지갑 속의 없는 돈을 헤아리는 내 모습을 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가장이 아닌 남편, 나는 어깨 무거운 아빠, 나는 어머님의 불효 자식.
나는 고개 숙인 40대 직장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껴안을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이어도 그들이 있음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그들이 없으면 나는 더욱 불행해질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나의 행복입니다.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나일 때보다 더 행복한 줄 아는 40대 입니다...

위의 글을 어느 40대 가장이 인터넷에 올려서 한동안 인터넷을 떠돌던 글이다.
나도 이 글을 읽으면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서 코끝이 찡해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아마도 가장의 무게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이끌어 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인터넷을 떠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 가장들은 꼭 저렇게 살아갈 수 밖에는 없는 것 일까?
저런 모습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할까?

지금부터 저 40대 가장의 짐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역할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봐야한다.
흔히들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는데 연극에는 여러 역할이 존재한다. 이처럼 우리도 삶에서 여러가지 역할을 맡으며 살아간다. 연극으로 따지면 1인 다역을 소화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때는 남편의 역할을 또 어떤 때는 아빠의 역할을 해야한다.
위 40대 가장의 글에서도 남편, 아빠, 아들, 직장인의 역할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이 글 전체에 뭍어나고 있다.


아마도 우리 대부분은 꽤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자식, 친구, 형이나 동생의 역할을 맡고 있을 것이고, 학교를 다니고 있으면 학생 직장을 다니면 직장인등 적어도 5~6개 또는 사회활동이 많은 사람은 10개가 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몸은 하나인데 이렇게 많은 역할을 수행하려니 당연히 힘들 수 밖에는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방법은 두가지이다.
첫번째는 역할을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필연적인 역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자식, 남편, 아빠, 동생 같은 역할은 내가 하기 싫다고 버릴 수 있는 역할이 아니다.
두번째 방법은 역할에 균형을 잡는 것이다. 먼저 내가 맡고 있는 역할을 나열하고, 매일 매일 하나의 역할을 정해서 그 역할에 좀 더 충실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오늘의 중심역할이 아빠라면 그날은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는 것이다. 또 오늘의 중심역할이 자식이라면 그날은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하는 것이다. 남편이중심역할이라면 부인에게 사랑의 카톡을 보내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하루 하루가 너무 짧다면 1주일 단위로 중심역할을 정해서 그 주에는 그 역할을 다른 때 보다 더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각 역할을 골고루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1인 다역을 소화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꼭 알아야할 것은 아무리 그래도 인생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아빠, 남편, 자식의 역할은 모두 조연이다. 내 삶의 주연은 바로 "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위 글의 40대 가장이 계속해서 "나는 내가 아닙니다" 라고 반복하고 있는 것도 주연은 없고, 조연만 가득한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모든 역할에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나"라는 주인공은 어떤 역할보다도 중요한 역할이므로 조연때문에 삶에서 주인공을 등장시키지 않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된다.
위의 40대 가장의 글에서는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고 글을 마무리 짖고 있지만 저렇게 주인공이 빠진 삶이 어떻게 행복한 삶이 될 수 있겠는가!

주인공만이 존재하는 1인 연극도 안되지만 조연 때문에 주인공이 등장하지 못하는 삶도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2017년 7월 19일 수요일

목표를 세우는 방법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를 침공하기 위해서 알프스 산을 넘을 때였다.
척후병 2개 분대를 보냈는데 그날 밤 눈보라가 심하게 불어서 길이 보이지 않았다.
첫번째 분대는 갈림길이 나오자 어디로 가야할 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왼쪽으로 가야한다. 오른쪽으로 가야한다. 아니면 그 자리에서 구조대를 기다려야한다.
의견이 엊갈렸다. 그러다가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고 일부 병사들만 본대로 돌아오고 나머지 병사는 모두 동사하고 말았다.
이런 첫번째 분대와 달리 두번째 분대는 모든 분대원이 한 명의 낙오도 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되돌아 왔다. 그래서 확인해 보니 두번째 분대는 한 병사가 지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분대원이 똘똘 뭉쳐서 복귀할 수 있었다고 했다.
당연히 지도가 있었으니 눈보라를 헤치고 모두 무사히 돌아온 것이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반전이 숨어있다.
그것은 병사가 가지고 있던 그 지도는 이곳의 지도가 아니라 다른 지역의 지도였다는 것이다.

위의 얘기를 통해서 보면 두번째 분대에게 지도는 자신들이 가야할 곳을 가리키는 이정표였을 것이다.
비록 잘못 표시된 이정표 였을 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에게는 희망이였고, 확신이였으며 분대를 똘똘 뭉치게하는 접착제였을 것이다.

지금부터 얘기하려는 목표도 위에 나온 얘기의 지도처럼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이정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목표를 너무 쉽게 포기한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보자 누구나 새해가 되면 새해 목표를 세울 것이다.
올해는 "다이어트를 한다" "담배를 끊겠다" "책을 100권 읽겠다" 등등 다양한 새해 목표를 세운다.
하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 이라고 몇 일 지나면 처음 시작할 때의 의욕도 사라지고 어느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단순히 의지의 문제일까? 우리가 그렇게 의지가 약한 사람들 일까?
내 생각에는 목표를 세우는 방법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목표는 어떻게 세우는 것이 옳바른 방법일까?



목표를 세우기 전에 우리는 먼저 목표를 2가지 종류로 분류해야 한다.
만약 일에 우선순위 정하기 글을 읽지 않았다면 꼭 읽어보기 바란다.
목표로 세우고자 하는 일이 (1) 중요하면서 급한 일인지 아니면 (4)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인지로 분류해야한다.
그 외의 (2) 중요하지 않지만 급한 일(3) 중요하지도 급하지도 않은 일은 목표를 세울 필요가 없는 일들이므로 무시한다.

먼저 (4)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의 목표를 세워보기로 하자.
(4)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이란 당장 급하게 할 일은 아니지만 자기 삶의 질을 높여주거나 성공으로 이끌어 주는 일들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얘기 했었다.
이 일들은 평소에 꾸준히 해야하는 일들로 아마 새해에 세우는 계획들이 모두 이 부분의 일들일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일인데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표를 세울 때 성과목표로 세우기 때문이다.

금연을 예로들어 보자.
만약 누군가가 "12월 말까지 담배를 끊겠다" 라고 목표를 세웠다고 해보자. 그리고 "매월 4 개피 씩 줄여나간다" 라고 세부목표도 세우고, 다시 "매주 1개피 씩 줄인다"라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고 해보자.
이것은 성과를 목표로 잡았기 때문에 성과목표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목표를 세울 것이다. 최종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잘게 쪼개서 세부 목표들을 세워 나가는 방식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경우를 과정목표로 바꾸면 다음과 같이 바꿀 수가 있다.
"연속해서 2개피를 피지는 않겠다." 라고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이렇게 과정을 목표로 세우는 것이 과정목표이다.
과정목표는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그 목표가 달성이 되면 그 다음 과정을 목표로 세우는 방식으로 목표를 계속해서 바꾸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최종 결과가 금연으로 나타나도록 목표를 세우는 방법이다.

아래 그림은 금연을 목표로 한 성과목표와 과정목표를 나타낸 것이다.


우리가 성과목표를 세우게되면 필연적으로 시간이라는 것이 관여하게 된다. 즉, 목표에 기한이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과정목표는 기한 없이도 목표를 세울 수가 있다. 과정목표는 습관이 형성되면 달성된 것이기 때문에 기한이 필요없는 것이다.
이 차이가 성과목표과정목표에 대한 달성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만약 성과목표를 세우고, 목표 기한이 되었을 때 달성을 못하게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면 자괴감도 쌓이고, 그 다음 기한까지 이전 목표와 새로운 목표를 함께 처리해야하는 부담감이 생기된다.
금연의 경우 첫번째 주에 1개피를 못 줄였다면 두번째 주에는 1주일 내에 2개피를 줄여야한다. 이런 일이 몇 주가 쌓이게 되면 사람들은 목표 달성이 불가능 하다고 판단하여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과정목표는 처음부터 기한이 없기 때문에 달성 못했다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 목표가 달성 되어야만 다음 목표를 만드는 방식이기 때문에 오직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중 인 상태와 목표 달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자괴감이 든다거나 이전 목표를 다음 목표와 함께 달성해야 하는 부담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과정목표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면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갑자기 회사에 구조조정 소문이 돌면서 업무 스트레스가 증가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되면 성과목표는 달성을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리스크(risk)는 고스란히 다음 주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과정목표는 업무 스트레스가 증가하여도 목표 달성에 시간이 걸릴 뿐이지 실패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해서 목표 달성을 위해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것이 과정목표가 외부환경의 영향에 강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누군가는 과정목표가 너무 느슨하게 목표를 관리하여 결국 금연을 달성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냐고 반문할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목표에 대한 스트레스로 목표를 아예 포기하게 만드는 성과목표 보다는 느리지만 끝까지 갈 수 있는 과정목표가 더 좋은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처음에 얘기 했듯이 (4)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에 속하는 것에만 적용하는 방법이므로 시간을 배제하고 목표를 세울 수 있는 과정목표가 더 적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1) 중요하고 급한 일에 대한 목표는 어떻게 세울 것인가?
이 영역의 일은 성과목표를 세워야 한다. 급하다는 것은 기한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의미이므로 시간 개념이 안들어간 과정목표를 세워서는 안된다.
이것이야 말로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성과목표를 세워서 하나하나 목표를 달성해 나가야한다. 이것에 대표적인 것이 회사 업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회사 업무를 과정목표로 세웠다가는 그 회사를 그만두는 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목표를 세울 때 (1) 중요하고 급한 일(4) 중요하고 급하지 않은 일로 구분하여 성과목표과정목표로 나눠서 계획을 세운다면 성공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7년 7월 11일 화요일

순욱처럼 죽을 것인가? 가후처럼 살아갈 것인가?

순욱

어느 날 순욱이 시름에 잠겨 있는데 문득 조조로부터 사자가 달려와 꾸러미 하나를 전했다. 풀어 보니 음식을 담는 그릇이었는데, 조조가 친필로 뚜껑을 봉한 것이었다.
순욱은 불길한 느낌을 누르며 봉함을 뜯고 뚜껑을 열었다. 그러나 그릇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순욱은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이내 조조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이제 그대가 먹을 것은 없다. 내가 그대에게 보낼 것은 이 빈 그릇과 같은 옛정의 껍질뿐이다."
순욱의 귀에는 그 같은 조조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다. 먹을 것이 없다면 죽는 길뿐이지 않은가. 순욱은 씁쓸하게 웃으며 그렇게 중얼거리고 미리 마련해 두었던 독을 꺼내 마셨다. 그때 그의 나이 쉰이었다. 그러나 죽는 순간까지 그를 괴롭힌 것은 조조를 잘못 본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말라진다는 바닷물 같은 인간의 권력욕에 대한 자신의 무지였다.
- 이문열의 삼국지 7권 96p -
 순욱은 조조를 20년 넘게 도운 최측근이였다. 그는 하후돈이나 허저같은 장수도 아니고 곽가나 사마의 같은 책사도 아니었다. 그는 조조가 전투를 나갈 때마다 그의 근거지를 맘놓고 맡길 수 있었던 뛰어난 행정가였다. 또한 그는 청렴한 선비로 조조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순욱이 처음 조조에게로 왔던 시기에는 조조의 세력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하지만 순욱은 조조보다 몇 배나 큰 세력인 원소의 요청을 거부하고 조조에게로 왔다. 순욱이 조조를 선택한 이유는 조조가 쓰러져가는 한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인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나서 최고의 세력으로 커진 조조가 한나라의 충신이 아니라 권력욕에 사로잡혀 끝임없이 권력을 탐하고 결국 황제의 자리마저 노리는 것을 보고 실망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비판하다가 결국 조조의 미움을 사게된다.
조조는 순욱을 죽일 기회를 노리다가 오나라 정벌을 위해 출전하면서 순욱을 억지로 데려가고 전쟁터에서 순욱에게 텅 빈 그릇을 보내고, 결국 순욱은 자살하게 된다.


가후

가후는 삼국지 전편에 걸쳐서 골고루 나오는 인물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처음으로 삼국지에서 등장하는 것은 동탁의 사위로 등장을 한다. 그는 동탁의 사위이자 모사가로 동탁이 천자를 피박하고 권력을 독차지하고 있을 때 그의 최 측근이었다.
그리고 동탁과 여포가 초선때문에 사이가 벌어졌을 때도 동탁을 달래서 초선을 여포에게 보내라고 설득하는 등 동탁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러다 결국 여포가 동탁을 죽이고, 다시 이각과 곽사가 여포를 쫓아냈을 때는 이각과 곽사의 모사가로 활약하여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 남아있게 된다.
그 이후 이각과 곽사의 또한 서로 싸우게 되고, 그 틈을 이용해 조조가 천자를 등에 업고 이각과 곽사를 소탕할 때는 용케도 몸을 빼내서 장수의 모사가가 된다.
가후가 장수의 모사가로 있을 때 조조가 장수의 땅을 침범하자 가후는 꾀를 내어 조조의 취기에 빠뜨리고, 결국 조조의 친위대장인 전위를 죽이고, 조조의 맏아들인 조앙마져 죽이는 성과를 거둔다. 또한 조조마져 죽을 고비를 넘기며 도망치게 만든다.
그런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준 가후 였지만 나중에는 조조의 모사가 되어 조조를 위해서 일하게 되고, 나중에는 조조의 첫째아들인 조비의 스승까지 되어 조비를 태자로 만들어주는데 큰역할을 하게된다.
이렇게 항상 권력의 중심에서 떠나지 않았던 가후는 70세까지 장수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이런 가후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조조가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말 세 마리가 나란히 한 구유에서 여물을 먹고 있었다. 너무 생생한 꿈이라 깨어난 뒤에도 조조는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가후를 불러 꿈얘기를 하며 물었다.
"지난날에도 말 세 마리가 한 구유에서 여물을 먹고 있는 꿈을 꾼 적이 있는데, 나는 마등 삼부자가 화근이 되리라는 뜻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마등이 이미 죽었는데도 어젯밤 다시 말 세 마리가 한 구유에서 여물을 먹고 있는 꿈을 꾸었다. 이게 좋은 꿈인가? 나쁜 꿈인가?"
가후가 듣기 좋은 말로 둘러댔다.
"말을 먹이신 것이라니 좋은 징조올시다. 말들이 조씨에게로 돌아와 기름을 받는데 의심쩍으실 게 무어 있습니까?"
그러나 실인즉 그 말 세 마리는 사마의와 사마소, 사마사 삼부자를 뜻한 것이었다.
- 이문열의 삼국지 8권 224p -

가후는 자신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항상 얘기를 돌려서 했다고 한다. 위의 얘기도 가후는 사마의 삼부자가 나중에 조조의 위나라에 큰 화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것을 조조에게 굳이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자신이 잘모르고 있다는 듯이 조조에게 듣기 좋은 소리로 얘기한 것이다.
아마도 조조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권력이 사마의 쪽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직감했을 수도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순욱과 가후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인물이다.
순욱은 원소를 뿌리치고 조조에게로 와서 조조를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 하였다.
그에 반해 가후는 동탁, 이각과 곽사, 장수, 조조, 조비에 이르기까지 변화의 흐름 속에 섞여서 자신의 삶을 살았다.
결국 순욱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가후는 70세까지 장수를 누렸다.

누구의 삶이 옳았는지는 시대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지는 것 같다.
과거에는 순욱의 깨끗한 자살이 가후의 비굴한 장수보다 아름답다 했을 것이고,
최근에는 가후의 뛰어난 처세술이 순욱의 고지식함보다 높게 평가받고 있는 듯 하다.


영화 "관상"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송강호가 바닷가에서 파도를 바라보며 후회하는 장면이 나온다. 송강호는 자신의 파도만 보았지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지 못했다고 얘기한다.
즉, 사람의 관상만 보았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고 얘기한다. 관상으로는 왕이 될 수 없는 사람이 왕이 되고, 평범한 관상을 가진 사람이 공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가후는 확실히 시대의 흐름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순욱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며 무너진 한 왕조를 부활 시키려 하다가 죽었고, 가후는 시대의 흐름에 몸을 실어서 그 흐름에 순응하며 살았던 것 같다.

2017년 7월 4일 화요일

일에 우선순위 정하기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일을 처리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동시에 발생하는 일들이 생기게 되고, 그랬을 경우에 어떤 일부터 처리해야하는지 고민하게된다.
대부분의 경우는 급한 일부터 처리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선택이다.
왜냐하면 급한일부터 처리하게되면 정작 중요한 일을 처리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일을 아래와 같이 4가지 종류로 분류해야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이 대부분의 사람은 급한 일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염두해두고 각각의 종류를 알아보자.

(1) 중요하고 급한일
중요하고 급한일은 최우선으로 처리해야할 일이다. 이 영역에 포함되는 일은 협상의 여지가 없다. 무조건 최우선 순위로 처리한다.
보고서 작성이나 업무회의 등 일정이 정해진 회사업무가 여기에 속한다.
월급쟁이로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있는 이상에는 회사업무는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단, 근무시간 내에서만이다. 근무시간 이후의 회사업무는 (2)번 영역인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에 속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2) 중요하지 않지만 급한일
이 영역에 포함된 일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대체가 가능한지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세미나 참석이나 팀 회식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세미나 참석을 다른 사람이 참석하고, 나중에 자료만 받아본다던지 사정을 얘기하고 팀회식에 빠진다던지 등이 가능하다.

(3)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일
이 영역의 일들은 제거해야 한다.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면 의외로 이 영역의 일들을 많이 하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TV 시청이나 게임을 하는 것들이 모두 이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영역에 속하는 일들은 최대한 줄이도록 노력해야한다.

(4)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
우리가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할 영역이 바로 이 영역의 일이다.
왜냐하면 급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홀히 생각하는 영역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부분을 잘 관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인생을 성공적을 살아가기 때문에 결코 소홀히 다뤄서는 안되는 일들이다.
예를 들면 독서, 운동, 자기계발을 위한 학습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위의 항목들은 예를 든 것이며 개인에 따라 항목의 위치가 다를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위의 4가지 종류로 분류하고 (1)번 일을 제일 먼저 처리하고, 그 다음 (2)번 일은 미룰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형태로 대체가 가능한 것인지 검토하여 미루거나 대체할 수 있다면 그렇게 처리한다. 만약 대체가 불가능하다면 당연히 처리해야한다.
그리고 (3)번 일은 더이상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4)번 일은 쉽게 잊어버리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며 반드시 진행해야한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읜 사람들은 (2)번과 (4)번의 일이 겹칠 경우 쉽게 (4)번의 일을 포기하고 (2)번의 일을 처리한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2)번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4)번 영역의 일을 포기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1)번과 (4)번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