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30일 토요일

기회를 만났을 때...

내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고, 
나를 발견했을 때는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내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나를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내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이다.

내가 저울을 들고있는 이유는 
내가 앞에 있을 때는 저울을 들어 정확히 판단하라는 의미이며

내가 날카로운 칼을 들고있는 이유는
칼같이 결단하라는 의미이다.

나의 이름은 기회이다.





이 글은 카이로스 동상 앞에 적혀있는 글이라고 한다. 카이로스는 '기회' 의 신이다.

이렇듯 재미있게 생긴 기회의 신을 잡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제일 먼저 기회를 알아볼 수 있어야한다.
기회는 앞머리가 길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가 없다고 했다. 이렇게 앞머리가 긴 기회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만족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이 필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기회를 알아볼 수가 없다.
기회는 만족의 안경을 벗고 필요의 안경을 써야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회를 알아보았다면 기회를 잡아야하는데 기회를 잡는 것은 공짜가 아니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한다. 그 대가는 편안함과 익숙함이다.
편안함과 익숙함을 버려야만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기회를 알아보더라도 이 편안함과 익숙함을 잃어버리는 것이 두려워 기회를 그냥 보내버린다.
댓가를 치르지 않으면 기회는 날개 달린 발로 재빠르게 도망가 버린다.


그리고 간혹 편안함과 익숙함의 댓가를 치르고 기회를 잡기는 했지만 막상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얼굴을 보면 기회가 아닐 수가 있다.
이렇게 기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평소에 기회를 알아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기회를 알아보는 안목은 경험을 통해서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밖에는 없는데 경험이 짧을 경우는 독서를 통해서 간접경험을 쌓는 것이 안목을 기르는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회가 확실하다는 판단이 생기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결단을 내린다는 것은 조금은 불편하고, 어색한 것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결단은 마치 칼로 천을 자르듯이 다시는 예전의 편안함과 익숙함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기회는 이런 의지를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편안함과 익숙함의 댓가를 치르고, 결단의 의지를 가졌더라도 기회가 반드시 결과물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기회가 통제할 수 없는 수 없이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회가 결과물을 만들어주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마라!
우리가 아는 성공한 사람들은 단 한번의 기회를 통해 성공한 것이 아니고,
수 많은 기회 중에서 단 하나의 기회가 만들어준 결과물로 성공했다는 것을 기억해라!




낯설다

내 주변 사람들이 낯설다.

일기를 쓰기로 맘을 먹었다.

일기를 쓰다보니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고,
생각이 많아지니 잘못된 믿음이 보였다.
잘못된 믿음을 바꾸니 나의 행동이 바뀌고,
내 행동이 바뀌니 내 주변 사람들이 바뀌었다.

난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 뿐인데
내 주변 사람들이 바뀌고 있다.

내 주변 사람들이 기쁘게 낯설다.

2017년 9월 25일 월요일

일단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일단은 시작해보라!

가파른 언덕 앞에서 일단은 올라가라!
밀어주거나 당겨줄 사람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당신이 언덕을 오르기 위해서 노력하면 주위에서 밀어주고 당겨줄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가파른 언덕 앞에서 일단은 올라가라!
중간에 장애물을 만날까봐 삽질과 곡괭이 질을 배우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장애물을 만나면 그 장애물을 제거하면서 삽질과 곡괭이 질을 배워라!

가파른 언덕 앞에서 일단은 올라가라!
정상에 올라서 후회할 것을 염려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정상에 올라서 후회를 하더라도 당신을 밀어주고 당겨준 사람들과 삽질, 곡괭이질은 남아있지 않은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면 일단은 시작해라.

2017년 9월 20일 수요일

슬플 때

슬플 때 슬픔을 이기는 방법은 그 슬픔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슬픔을 말로 얘기하다가 보면
당신은 그 슬픔을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객관화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슬픔을 얘기하는 것 만으로도
슬픔이 줄어드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당신이 슬프면 들어줄 사람을 만나서 슬픔을 얘기해라!
누군가 슬퍼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슬픔을 들어주어라!

2017년 9월 16일 토요일

손바닥

손바닥을 보면서 미래를 꿈꾼 적이 있었다.

생명선, 재물선, 두뇌선을 짚어가며 미래를 예측했었다.
생명선엔 잔주름이 많아서 고생을 많이 한단다.
재물선은 손가락 사이로 뻗어 있어서 돈이 줄줄 샌단다.
두뇌선은 짧아서 머리가 나쁘단다.

난 더이상 빈 손바닥을 보면서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지금은 오직 내 손바닥 위의 책을 보면서 미래를 꿈꾸고 있다.

2017년 9월 14일 목요일

불공평

세상은 불공평하다.

사람마다 유전자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머리 속의 생각이 다른데 어떻게 공평할 수 있겠는가?

세상은 불공평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세상은 공평해진다.
불공평함을 인정한다는 것은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곳에 어찌 불공평함이 생기겠는가?

그래서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인정하면 세상은 공평해진다.

2017년 9월 13일 수요일

노크

기회는 노크하지 않는다.

기회는 노크하지 않고 내 방 앞을 그냥 지나간다.
기회를 잡으려면 수시로 문을 열어 밖을 내다봐야 한다.
운 좋게 기회를 방으로 불러들여도 방이 지저분하면 기회는 금방 돌아서 나가버린다.

기회를 잡으려면 평소에 방을 깨끗히 치워놓고,
수시로 방문을 열어 밖을 내다봐야 한다.

기회는 내 방문을 노크하지 않는다.

차갑게

두통을 없애는 방법은 머리를 차갑게 만드는 것이다.

숙취로 머리가 아플 때 찬물로 머리를 감으면
두통이 완화되는 것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머리를 흔드는 골치아픈 문제가 있다면
차가운 질문을 던져보아라!
해결 못할 문제는 없을 것이다.

강적을 이기는 방법


주유는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오나라의 대장군이다.
유표가 죽은 후 후계다툼의 혼란에 빠져있는 형주를 차지한 조조는 강남을 차지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린다. 그리고 그 선전포고로 오나라의 손권에게 항복할 것을 요구한다.
이때 유비는 변변한 성하나 없는 상태였는데 오나라가 조조에게 항복하면 그의 입지는 더욱 더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되어 있었다.
이에 제갈량은 오나라의 손권과 조조가 싸우도록 설득하게 되고, 주유 또한 전쟁을 주장하자 결국 손권은 조조와의 싸움을 결정하게된다.
주유는 대장군으로 임명되어 적벽에서 조조와 싸워서 대승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적벽대전 최고의 전리품이라고 할 수 있는 형주는 유비가 차지하게 된다. 주유는 이를 부당하게 생각하여 형주를 돌려줄 것을 유비에게 요구했으나 유비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형주를 돌려주지 않는다.

이때부터 주유와 제갈량은 형주를 빼앗기 위한 보이지 않는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주유는 형주를 빼앗기위해서 온갖 방법을 강구하지만 매번 제갈량의 벽 앞에서 계속해서 실패하고 만다. 결국 주유는 촉을 정벌한다는 명목하에 길을 빌려달라는 핑게로 군사를 출전시켜 형주를 차지하려 했으나 이를 미리 간파한 제갈량에게 수모를 당하여 부상까지 입는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때 입은 상처로 죽고만다.
주유는 죽기전에 원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면서 죽었다고 한다.

"하늘은 왜 주유를 낳으시고 또 제갈량을 낳으셨습니까!"

주유에게는 조조의 백만대군보다 제갈량 한 사람이 더 강한 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주유는 제갈량과의 대결에서 매번 정면승부를 펼친다. 즉, 지략으로 제갈량을 이기려고 했다. 어쩌면 주유는 자신이 제갈량보다 지략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번 지면서도 지략으로 승부를 보려고 고집할 이유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주유는 하늘을 원망하면 죽음을 맞게된 것이다.




이번에는 제갈량과 싸웠던 위나라의 사마의에 대해서 알아보자.
사마의 또한 주유와 마찬가지로 천재적인 전략가이자 장군이었다.
사마의는 위를 정벌하려는 제갈량의 공격을 막아내는 임무를 부여받고 대장군이 되어 제갈량과 싸운다. 하지만 아무리 사마의가 위나라에서는 최고의 지략가였더라도 제갈량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사마의는 싸울 때마다 제갈량에게 졌다.
그러면서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결코 지략으로는 제갈량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는 전략을 바꾼다. 그것은 제갈량과 싸우지 않는 것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마주칠 손바닥이 없으니 소리가 날 턱이 없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쳐들어와도 굳게 지키기만 할 뿐 나가서 싸우지 않는다. 당시 사마의가 이끄는 위의 군사력은 제갈량이 이끄는 촉의 군사력보다 2배는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다가 굳게 지키기만 할 뿐 나와서 싸우질 않으니 천하의 제갈량이라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제갈량은 사마의를 격동시키려고 여자 옷을 선물로 보낸다. 한마디로 여자처럼 숨어 있지만 말고 나와서 싸우자는 의미로 여자 옷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사마의는 그 선물에는 신경도 안쓰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 선물을 가져온 사자에게 제갈량에 대해서 물어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자는 제갈량이 음식은 적게 먹고 군무는 많이 처리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그러자 사마의는 이제야 자신이 제갈량을 이길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했다고 한다.
즉, 일은 많이 하는데 음식은 적게 먹으니 곧 제갈량이 죽을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 지나친 군무로 인해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과로로 죽게된다.


촉나라의 제갈량, 오나라의 주유, 위나라의 사마의는 삼국을 대표하는 당대 최고의 전략가였다.
그 중에서 지략으로는 제갈량이 최고였을 것이다. 그것은 싸움의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승리한 사람은 위나라의 사마의다.
사마의가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게임의 룰(Rule)을 바꿨기 때문이다.

주유는 제갈량과의 싸움에서 "전투에서 승리하여 성을 빼앗는다."는 룰(Rule)을 고수하였다.
하지만 사마의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제갈량과의 싸움을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제갈량말고 다른 사람과 싸워서 이긴다." 는 룰(Rule)을 만들어낸 것이다.


만약 당신이 강적을 만났다면 기존의 룰(Rule)로 강적을 상대하지 마라!
사마의처럼 게임의 룰(Rule)을 창조하고 승리해라!


2017년 9월 6일 수요일

모르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라!

우리는 종종 모르는 것이 창피해서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혹시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인가?'
'이런 것도 모른다고 비웃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만약 당신이 질문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것을 아는 사람보다 항상 뒤처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질문하여 그것을 알게 된다면 이제 당신은 그것을 알려준 사람과 똑같아지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겸손히 질문해라!
겸손이 지혜의 근본이다.

예술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있다.
난 "인생은 길고 기술은 짧다" 고 변형해서 얘기한다.

기술은 계속 변화 발전하여 예전 기술은 시간이 오래될 수록 가치가 떨어진다.
반면 예술은 시간이 지날 수록 오히려 가치가 올라간다.

기술자로서 예술같은 기술은 무엇이 있을 지 고민해 본다.

괜챦은 사람

당신은 괜챦은 사람인가?

어떤 이는 괜챦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고 살아간다.
아니 모든 사람이 가끔씩은 괜챦은 사람 코스프레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도 괜챦은 사람 코스프레때문에 웃으면서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어려서부터 받아온 사회적 가치관 교육 때문이다.

가치관은 사회적(도덕적) 가치관과 개인적(행복추구) 가치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약 당신이 사회적 가치관에 치중하여 살아간다면 괜챦은 사람 코스프레를 자주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개인적 가치관에 치중하여 살아간다면 개인주의자라고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다.

당신이 정말 괜챦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사회적 가치관과 개인적 가치관의 균형을 잘 맞추면서 중도를 걸어가야 할 것이다.

2017년 9월 4일 월요일

경쟁

경쟁의 반대말은 창조이다.

경쟁은 한정된 자원에서 이루어지는 제로섬(Zero Sum) 게임이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이득을 보고, 진 사람은 손해를 본다.
우리는 항상 이런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경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창조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 다른 사람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
한때 유행했던 블루오션 전략이 경쟁을 창조로 바꾼 대표적인 예이다.

지금 당신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지쳐가고 있다면, 경쟁을 창조로 바꾸는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
경쟁의 반대말은 창조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