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6일 수요일

역할의 균형 맞추기

나는 내가 아닙니다.
아내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아내의 남편입니다.
명세서만 적힌 돈 없는 월급 봉투를 아내에게 내밀며 내 능력 부족으로 당신을 고생시킨다고 말하며 겸연쩍어하는 아내의 무능력한 남편입니다.
세 아이의 엄마로 힘들어하는 아내의 가사일을 도우며 내 피곤함을 감춥니다.
그래도 함께 살아주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남편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아이들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없는 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요것 조것 조잘대는 막내의 물음에 만사를 제쳐놓고 대답부터 해야하고 이제는 중학생이 된 큰놈들 때문에 뉴스 볼륨도 숨죽이며 들어야합니다.
막내의 눈 높이에 맞춰 놀이 동산도 가고 큰 놈들 학교 수행평가를 위해 자료도 찾고 답사도 가야합니다.
내 늘어진 어깨에 매달린 무거운 아이들 유치원비, 학원비가 나를 옥죄어 와서 교복도 얻어 입히며 외식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생일날 케이크 하나 꽃 한 송이 챙겨주지 못하고 초코파이에 쓰다만 몽땅 초에 촛불을 켜고 박수만 크게 치는 아빠.
나는 그들을 위해 사는 아빠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어머님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어머님의 불효자식입니다.
시골에 홀로 두고 떨어져 있으면서도 장거리 전화 한 통화에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불쌍한 아들입니다.
가까이 모시지 못하면서도 생활비도 제대로 못 부쳐드리는 불효자식입니다.
그 옛날 기름진 텃밭이 무성한 잡초밭으로 변해 기력 쇠하신 당신 모습을 느끼며 주말 한번 찾아 뵙는 것도 가족 눈치 먼저 살펴야 하는 나는 당신 얼굴 주름살만 늘게 하는 어머님의 못난 아들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40대 직장노동자입니다.
월급 받고 사는 죄목으로 마음에도 없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며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도 삼켜야합니다.
정의에 분노하는 젊은이들 감싸안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고개 끄떡이다가 고래 싸움에 내 작은 새우 등 터질까 염려하며 목소리 낮추고 움츠리며 사는 고개 숙인 40대 남자.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집에서는 직장 일을 걱정하고 직장에서는 가족 일을 염려하며 어느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엉거주춤, 어정쩡, 유야무야한 모습.
마이너스 통장은 한계로 치닫고 월급날은 저 만큼 먼데 돈 쓸 곳은 늘어만 갑니다.
포장마차 속에서 한 잔 술을 걸치다가 뒷호주머니 카드만 많은 지갑 속의 없는 돈을 헤아리는 내 모습을 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가장이 아닌 남편, 나는 어깨 무거운 아빠, 나는 어머님의 불효 자식.
나는 고개 숙인 40대 직장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껴안을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이어도 그들이 있음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그들이 없으면 나는 더욱 불행해질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나의 행복입니다.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나일 때보다 더 행복한 줄 아는 40대 입니다...

위의 글을 어느 40대 가장이 인터넷에 올려서 한동안 인터넷을 떠돌던 글이다.
나도 이 글을 읽으면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서 코끝이 찡해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아마도 가장의 무게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이끌어 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인터넷을 떠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 가장들은 꼭 저렇게 살아갈 수 밖에는 없는 것 일까?
저런 모습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할까?

지금부터 저 40대 가장의 짐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역할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봐야한다.
흔히들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는데 연극에는 여러 역할이 존재한다. 이처럼 우리도 삶에서 여러가지 역할을 맡으며 살아간다. 연극으로 따지면 1인 다역을 소화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때는 남편의 역할을 또 어떤 때는 아빠의 역할을 해야한다.
위 40대 가장의 글에서도 남편, 아빠, 아들, 직장인의 역할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이 글 전체에 뭍어나고 있다.


아마도 우리 대부분은 꽤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자식, 친구, 형이나 동생의 역할을 맡고 있을 것이고, 학교를 다니고 있으면 학생 직장을 다니면 직장인등 적어도 5~6개 또는 사회활동이 많은 사람은 10개가 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몸은 하나인데 이렇게 많은 역할을 수행하려니 당연히 힘들 수 밖에는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방법은 두가지이다.
첫번째는 역할을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필연적인 역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자식, 남편, 아빠, 동생 같은 역할은 내가 하기 싫다고 버릴 수 있는 역할이 아니다.
두번째 방법은 역할에 균형을 잡는 것이다. 먼저 내가 맡고 있는 역할을 나열하고, 매일 매일 하나의 역할을 정해서 그 역할에 좀 더 충실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오늘의 중심역할이 아빠라면 그날은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는 것이다. 또 오늘의 중심역할이 자식이라면 그날은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하는 것이다. 남편이중심역할이라면 부인에게 사랑의 카톡을 보내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하루 하루가 너무 짧다면 1주일 단위로 중심역할을 정해서 그 주에는 그 역할을 다른 때 보다 더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각 역할을 골고루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1인 다역을 소화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꼭 알아야할 것은 아무리 그래도 인생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아빠, 남편, 자식의 역할은 모두 조연이다. 내 삶의 주연은 바로 "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위 글의 40대 가장이 계속해서 "나는 내가 아닙니다" 라고 반복하고 있는 것도 주연은 없고, 조연만 가득한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모든 역할에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나"라는 주인공은 어떤 역할보다도 중요한 역할이므로 조연때문에 삶에서 주인공을 등장시키지 않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된다.
위의 40대 가장의 글에서는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고 글을 마무리 짖고 있지만 저렇게 주인공이 빠진 삶이 어떻게 행복한 삶이 될 수 있겠는가!

주인공만이 존재하는 1인 연극도 안되지만 조연 때문에 주인공이 등장하지 못하는 삶도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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