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8일 월요일

애자일 Story point 의 의미

애자일 개발 방법론에 보면 Story Point 라는 것이 있다.
이 점수의 의미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자!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요구사항을 분석하고 작업목록을 추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작업내역 각각의 작업량을 추정해야하는데 이 작업량 추정에 Story Point 가 사용된다.

우리는 보통 작업량을 추정할 때 일(Day)을 단위로 사용하여 추정하게 된다.
즉, '이 작업은 몇 일 걸릴 일이다' 라고 추정하는 것이다. 근데 이것은 문제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보면 A라는 작업은 하루 8시간씩 2일동안 작업해야만 끝낼 수 있는 작업이다.
그리고 B라는 업무는 오전에 4시간 작업하고 나머지 4시간은 기다리는 식으로 2일동안 작업해야 한다고 했을 때 A 작업과 B 작업을 모두 2일로 추정한다면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B 작업을 할 때는 오후에 다른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일(Day) 단위로 작업량을 추정하게 되면 B작업의 경우는 오후의 남는 시간이 가려지는 문제가 발생하여 작업량이 과하게 추정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Story Point 이다.

Story Point 는 노력(Effort)의 단위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다시말하면 이 작업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어떤 방해도 받지않고 한사람이 이 작업만 하루 8시간씩 할 경우 몇 일이 걸리는지 추정하는 것이 Story Point 라고 일단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위에 얘기했던 A 작업은 Story point 가 2 이고 B는 1이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Story point 를 통해서 작업량을 정확히 추정할 수 있다.
A 작업과 B 작업을 마치는데는 Working day 3일이 필요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일정계획을 세운다면 A 작업은 월화수 3일의 기간이 필요하고, B는 월화 2일의 기간이 필요한 것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결국 A 작업은 Working day 3일이 필요하고, B 작업은 Working day 2일이 필요한 작업이 된 것이다. 물론 이 예는 한사람이 작업할 경우를 가정하여 세운 일정계획이다.

이렇게 Story point 는 노력(Effort)의 량이라는 개념으로 작업의 정확한 일정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또 한가지 Story point 가 가지고 있는 기능은 사람마다 또는 팀마다의 작업량 추정치의 차이를 극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예를들어서 작업이 A 작업 밖에는 존재하는 않는다는 가정에서 개똥이는 위의 예처럼 A라는 작업의 노력(Effort)를 2 Story point로 추정했다.
근데 소똥이는 A라는 작업의 노력(Effort)를 4 Story point 로 추정한 것이다.
그리고 둘은 모두 정직한 개발자이기 때문에 모두 Working day 2일만에 작업을 모두 끝냈다.


그렇다면 개똥이는 Story point 를 정확히 추정했으니 훌륭한 개발자이고, 소똥이는 2배나 잘못 추정했으니 나쁜 개발자일까?
그렇지않다. Story point 의 단위가 일(Day)이 아니라 노력(Effort)이기 때문에 둘다 훌륭한 개발자이다.
Story point 를 정할 때 우리는 익숙하기 때문에 일(Day)로 노력(Effort)의 단위를 추정한 것이지 엄밀히 따지면 일(Day) 과 노력(Effort)은 1:1 일 필요는 없다.
사람마다 경험이 다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작업량 추정도 다 다르게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똥이는 일(Day)과 노력(Effort)이 1:1 인 개발자이고, 소똥이는 일(Day)과 노력(Effort)이 1:2 인 개발자인 것이다. 누가 맞고 틀리고가 없는 것이다.
이것을 Story point 의 속도(Velocity)라고 한다.



그래서 애자일에서는 Sprint 를 진행하면서 그 팀의 Story point velocity 를 측정하여 다음번 Sprint 에는 그 Velocity 에 맞는 총점의 Story point 들을 선정하고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팀이 Velocity 가 높으냐 낮으냐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매 Sprint 마다 Velocity 가 일정한 팀은 작업량 추정을 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매 Sprint 마다 Velocity 가 들쭉 날쭉한 팀은 작업량 추정을 잘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팀이 Velocity 가 들쭉 날쭉하다면 작업량 추정방법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하는 팀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만약 영화 동방불패를 떠올렸다면 당신은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동방불패에서는 무림 절대고수 동방불패가 이 세상에는 자신을 상대할 사람이 없다는 의미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친다.


만약 당신이 불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석가모니(석가모니의 뜻은 석가족의 성자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고타마 싯다르타를 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겠다)의 첫번째 깨달음이였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석가모니의 탄생 설화에 의하면 석가모니가 태어나서 첫번째로 한 말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라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어떻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석가모니의 첫번째 깨달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의 뜻은 '하늘과 땅을 다 뒤져봐도 내가 가장 존귀하다.' 라는 뜻이다. 그냥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무척 건방지게 들리는 말이다. 자기 말고는 존귀한 사람이 없다는 것처럼 들린다. 첫번째 깨달음 치고는 너무 이기적이고 건방지다는 느낌마져든다.
그러니 동방불패가 상대편의 무술 실력을 얇잡아 보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외치고 돌아다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사실 동방불패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 깨달음의 진정한 의미는 '자유'를 뜻하는 것이다. 불교의 핵심가치인 '자유'인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의아해할텐데 다음의 얘기를 통해 좀더 이해해보자!

어느 나라에 궁궐같은 커다란 집을 가진 엄청난 부자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그 부자가 친구집에 놀러가서 하루 밤을 자게 되었다.
그런데 한 밤중에 그 부자의 하인이 달려와서 궁궐같은 커다란 집에 불이 났다고 알려준다.
깜짝놀란 부자는 자신의 집으로 한 걸음에 달려간다.
집에 도착하니 정말 집 전체에 불이 붙어서 활활 타고있는 것이 아닌가!
부자는 한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되어 땅을 치면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 하인 하나가 부자에게 말했다.
'주인님! 사실 주인님이 친구집에 간 사이에 이 나라의 왕이 지나가다가 집이 맘에 든다고 하여 왕에게 이 집을 팔았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부자는 울음을 뚝 그치고 갑자기 웃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본 하인이 다시 부자에게 말했다.
'그런데 주인님! 왕이 지나가던 길이었기 때문에 도장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여 계약서를 작성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자는 웃던 것을 멈추고 다시 슬피 울기 시작했다.
그때 어디선가 말 발굽소리가 들리면서 그 나라의 왕이 급하게 달려왔다.
자신이 낮에 보고간 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것이다.
왕 앞에서 슬피 울고 있는 부자를 보고 왕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자여! 그대는 슬퍼하지 마라. 내가 비록 구두로 약속을 했지만 나는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다. 내가 이집을 살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그 말을 듣고는 부자는 다시 울음을 멈추고 기뻐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궁궐같은 집은 활활 타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현재 인도에서 성인이라고 불리는 라즈니쉬니가 쓴 '달마' 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내가 군대 있을 때 상병 진급휴가 나가서 사온 책이 이 책이였고, 이 책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은 기억이 생생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유가 좀 보이는가?
이 이야기에서 부자는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부자는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한다. 여전히 집을 불타고 있는데도 그는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한다.
주위 현상은 바뀐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그는 계속해서 행복과 불행을 왔다갔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조차도 맘대로 못하는데 어떻게 자유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럼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내가 저 책을 읽을 당시의 군대 이야기를 해주겠다.

내가 근무한 부대에는 대공 초소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1년 365일 24시간 근무자가 초소를 지키며 혹여 적 항공기가 날아오는지 관측해야한다.
결국 항상 근무자가 있어야하기 때문에 부대원이 돌아가면서 근무를 서게 되어 있는데 문제는 그 근무 일정을 행정병이 짠다는 것이다.
당시 대공초소 근무일정을 짜는 행정병이 나와 친한 고참이었는데 하루는 대공초소 근무일정 때문에 매일 욕먹는다며 힘들다고 얘기했다.
당시 그 행정병의 계급은 일병이여서 자기보다 고참들은 맨날 찾아와서 '근무를 바꿔달라' '왜 나는 야간에만 근무를 서는냐' 는 등의 이유로 항상 욕하고 간다는 것이다.
난 그 행정병의 얘기를 듣고나서 '달마' 책의 부자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사실 근무 일정에 불만을 갖는 고참들은 자기가 정말로 힘들어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보다 계급이 낮은데 낮 근무를 서고, 자기는 새벽근무를 선다든지 아니면 누구는 평일에 근무서는데 자기는 휴일에 근무를 선다는 등의 이유였다.
일례로 부대 전체가 외부로 훈련을 가게되면 일부 인원만 남겨서 대공초소 근무를 서야한다. 그때는 하루에 8시간 많게는 12시간씩 대공초소 근무를 서야한다. 그런데도 서로 대공초소 근무를 서겠다고 난리다. 왜냐하면 외부로 훈련 나가는 것이 대공초소 근무 서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기 때문이다.
난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저 부자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 또한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남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을 깨닫고 나서는 난 대공초소 근무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난 2시간정도 대공초소 근무설 정도의 체력은 충분히 되었고,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좀 귀챦을 뿐이지 못할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상을 남이 아닌 자신을 중심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스스로 진정한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추구하는 깨달음 즉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이다.

이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왜 자유를 뜻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자!
석가모니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존귀한 존재이니 나를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얘기해보자!
석가모니가 태어났을 때의 얘기를 했으니 이제는 임종할 때의 얘기를 해보자.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나려 할 때가 가까워지자 제자들이 모두 모여서 슬퍼하고 있었다. 그 때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주게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는 석가모니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고 깨달은 사람을 뜻하는 일반명사이다. 그래서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마지막 가르침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도 각자가 모두 부처가 될 수 있으니, 나(석가모니)의 틀을 벗어나서 너희 각자의 독립된 부처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어떤가 석가모니의 '천상천하 유아독존' 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두 가르침이 하나로 연결되지 않는가?
난 이 두 가르침을 좀 더 현대적인 언어로 바꾸면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존감을 갖고 인생을 주인공으로 당당히 살아가라!'






노인


모든 사람은 육체적으로 노인이 된다.

노인이 되기 전에 가졌던 능력들은 육체적으로 노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저평가를 받는다.
그로인해 정년퇴직을 강요당하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허드렛일에 내몰리게 된다.

육체적인 노인이라고 반드시 정신적인 노인이 되는 것은 아닌데도 사회에선 그렇게 취급받는다.

모험


사람들이 모험을 꺼리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려움은 상상에서 나온다는 것을 아는가?

당신이 번지점프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이 만약 두려움을 느낀다면 당신은 줄이 끊어지는 상상을 했거나 아니면 떨어지는 상상을 한 것이다.
이렇듯 두려움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날 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은 자명하다.
당신이 번지점프의 줄이 튼튼하다고, 허리를 감싸고 있는 안전장치가 제대로 동작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다.

모험을 해야할 때 자신을 믿고, 동료를 믿고, 주위 환경을 믿어보자!
그러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모험할 용기가 생길 것이다.

10년 뒤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알고 싶다면 지금 당신의 모습을 보면 된다.

지금 지하철에서 게임만 하고 있다면 10년 후에도 당신은 지하철에서 게임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지금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다면 10년 후에 당신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게임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지금 당신이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10년 뒤에도 당신은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10년 뒤 당신의 모습을 바꾸고 싶다면 지금의 당신 모습을 바꿔라!

2017년 8월 18일 금요일

기대다

부부란 서로 기대기로 약속한 사이입니다.
기댄다는 것은 서로가 힘의 균형을 맞춰야 쓰러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습니다.

나도 결혼 초기에는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기대기를 거부하고 업고간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업고 가는 사람은 쉽게 지치게 되고, 업힌 사람은 너무 불편해 했습니다.
업고가는 나는 짜증이 늘었고, 업힌 아내는 날 무뚝뚝한 남편이라 불평했습니다.

지금은 서로 기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회사일로 일들 때면 캔맥주를 마시며 아내에게 푸념을 늘어놓고 위로를 받습니다.
힘든 결정을 해야할 때는 아내에게 제일 먼저 얘기하고 의견을 듣습니다.

부부란 서로 기대고 살아가기로 약속한 사이입니다.

2017년 8월 17일 목요일

어떻게

더 좋은 직장을 갖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 직장에서 원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습관을 만들 수 있는 행동을 지금 당장 꾸준히 하세요.

아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들과 소통할 수 있는 습관을 만들 수 있는 행동을 지금 당장 꾸준히 하세요.

내 시간을 갖고 싶은데 그럴 시간이 없어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중요하지도 급하지도 않은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습관을 없애는데 필요한 행동을 지금 당장 꾸준히 하세요.

은퇴 후의 삶이 걱정인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은퇴 후 하고싶은 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습관을 만드는데 필요한 행동을 지금 당장 꾸준히 하세요.

행복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행복을 주는 일을 하는 습관을 만들 수 있는 행동을 지금 당장 꾸준히 하세요.

2017년 8월 15일 화요일

예측


예측을 평가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아이디어를 죽이는 행위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듣게되면 마치 그 쪽의 전문가인 것처럼 그 아이디어에 대해서 평가를 한다.
만약 그 평가가 정말 평가라면 그나마도 다행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예측을 평가로 포장하여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조언을 한다.
생각해 보라! 당신이 낸 아이디어가 정말 새로운 것이라면 당신보다 그 아이디어에 대해서 깊게 생각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당신의 아이디어를 평가해 줄 수 있겠는가?
듣는 사람도 처음 듣는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온갖 예측을 평가로 포장하여 당신에게 조언을 해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만약 당신에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다면 다른 사람의 조언에는 신경쓰지 말고 아이디어를 현실화 하기위해서 노력해라!
또는 누군가가 당신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들려준다면 예측을 평가로 포장하여 말하지말고, 상대에게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만을 보내라!

2017년 8월 10일 목요일

당신의 믿음을 의심하라



위의 광고는 일본의 어린이 재단에서 제작한 광고로 한 동안 인터넷에서 유명했었던 광고이다. 만약 못 봤다면 꼭 시청하길 바라고, 봤더라도 한번 더 시청하기 바란다.

광고 내용은 학교에서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그림을 그리라고 얘기한다.
아이들은 저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한 아이가 계속해서 도화지 전체를 검정색으로만 칠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걱정된 선생님은 엄마 아빠에게 얘기하게 되고, 엄마 아빠는 아이가 걱정되어 정신병원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다.
하지만 의사들도 이유를 알지 못하고 결국 아이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이는 그곳에서도 계속해서 도화지에 검정색만 칠한다.
그러던 어느날 선생님은 결석한 아이의 서랍에서 퍼즐 조각을 발견하고, 간호사 또한 아이의 그림이 서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결국 선생님과 의사들은 그 아이의 그림을 체육관에 모두 펼쳐놓게 되고, 거기서 커다란 고래의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제일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이 자막이 나온다.
'아이의 꿈을 북돋아 주려면 당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세요.'


이 광고를 처음 보고나서 너무나도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내 아이의 상상력을 부모라는 권위로 교육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없애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다.
이 광고의 어른들도 그림은 당연히 도화지 안에 들어가도록 축소해서 그려야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이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까지 한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믿는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의심해봐야한다.

여러분이 IT 쪽에서 일하고 있다면 쿼티(Qwerty) 자판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지금 여러분이 사용하는 키보드의 자판 배열이 쿼티 자판배열이다.
쿼티(Qwerty) 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자판의 왼쪽 상단의 영어 글자 6개를 연속으로 타이핑하면 나타나는 단어이다.


그런데 현재 전세계적으로 90% 넘게 사용하는 이 키보드의 자판배열이 어떻게 정해졌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타이핑을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나 또한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의 워드프로세스가 나오기 전에 사람들은 타자기라는 것을 사용하였다.
내가 어렸을 때 상고 다니는 누나가 타자기로 타자 연습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타자기는 쇠막대가 반원으로 배치되어 키보드를 칠 때마다 하나씩 나와서 정 가운데의 리본을 때리면 종이에 리본에 뭍어있는 잉크가 종이에 인쇄되는 방식으로 동작한다.


그런데 문제는 자판를 너무 빨리 치게되면 앞에 친 쇠막대가 원래 위치로 돌아가기 전에 새로운 쇠막대가 올라와서 두 막대가 엉키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했던 타자기 발명가인 미국인 크리스토퍼 라탐 숄스(1819~1890)는 자주 사용하는 글자를 가장 멀리 배치하도록 자판은 구성하게되고 그 배열이 쿼티(Qwerty) 자판 배열인 것이다.

결국 쿼티(Qwerty) 자판은 너무 빠른 타이핑을 방지하기 위해서 가장 불편하게 만들어진 자판 배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자판 배열을 컴퓨터가 발명되면서 그대로 키보드에서 사용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이 키보드 자판배열을 바꾸려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거스트 드로락 박사는 쿼티(Qwerty) 자판의 문제를 인식하고 더 효율적인 드보락(Dvorak) 자판을 제안하였고, 쿼티(Qwerty) 자판보다 더 효율적인 자판이라는 것을 인정받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쿼티(Qwerty) 자판을 밀어낼 수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컴퓨터의 키보드를 처음 만들 때 타자기 자판배열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라는 믿음을 아무런 검증없이 받아들이는 바람에 지금도 전세계 컴퓨터 사용자들은 가장 비효율적인 자판의 키보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잘못된 믿음은 우리의 자유를 가두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코끼리 조련사들은 어린 코끼리를 잡아와서 말뚝에 줄로 묶어 놓는다고 하다. 그러면 몇 일간 어린 코끼리는 말뚝에 묶인 줄을 끊으려 발버둥을 친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포기하게되고 더이상 묶인 줄을 풀려하지 않게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그 코끼리가 커서 그런 줄은 쉽게 끊을 수 있는 힘이 생겨도 여전히 자신은 그 줄을 끊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코끼리는 자신의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서 족쇄를 영원히 풀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혹시 지금 나는 저 코끼리처럼 자신의 잘못된 믿음에 갇혀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들을 다시 한번 의심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