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5일 목요일

부패하는 기술, 발효하는 데이터


주말에 서일농원을 다녀왔다.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서일농원은 3만여평의 부지에 2000여개의 장독대를 가지고 있는 농원이다. 농원이라기 보다는 커다란 공원처럼 조경이 너무나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농원 내부에 '솔리'라는 식당이 하나 있는데 12시에 갔더니 2시간을 기다려야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해서 결국 식사는 포기하고 말았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데 왜 식당을 하나만 만들었는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라면 식당을 더 늘려서 더 많은 손님을 받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원을 둘러보면서 줄 맞춰 놓여있는 수 많은 장독대를 보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서일농원의 비즈니스 모델은 식당이 아니고 '장을 담가서 파는 것'이란 것을 말이다. 식당은 어쩌면 장맛을 소개하는 역할을 할 뿐 핵심 비즈니스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굳이 식당을 더 크게 운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식사를 한 고객보다 식사를 못하고 그냥 돌아가는 고객들이 된장이나 청국장을 사갈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서일농원은 보면서 "장담그기" 비즈니스를 생각해 보았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집에서 장을 담가 먹었었다. 그 시절에는 절대 성공할 수 없었던 비즈니스 모델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서 더 이상 집에서 장을 담가먹지 않게 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나타난 것이다. 물론 대량으로 생산된 된장, 고추장이 마트에 가득하지만 서일농원의 고급화 전략은 나름의 고객층을 확보하며 비즈니스를 성공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비즈니스의 특징은 "시간이 부가가치를 높여준다"는 것이다. 시간이 부가가치를 올려주는 사업은 주로 예술쪽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예를 들면 골동품이 시간이 지날 수록 그 가치가 올라가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관여하게 되면 신생 업체가 기존 업체를 밀어내기가 무척 어렵게 된다. 누군가 서일농원과 동일한 비즈니스 모델로 사업을 하려고 서일농원의 장담그는 레시피를 모두 알아냈다고 해도 장이 발효되고 맛이 깊어질 때 까지 사업을 지속할 수 없다면 성공할 수 없다. 그렇게 보면 서일농원의 비즈니스 모델은 누가 쉽게 넘보기 힘든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IT 쪽에서도 이렇게 시간이 가치를 높여주는 사업 모델이 있을까?
IT 는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고, 예전의 기술은 사라져간다. 이런 환경에서 과연 시간이 지날 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있을까?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데이터일 것이다.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지만 데이터는 시간이 지나면 발효한다.
여기서 잠깐 부패와 발효를 차이를 알아보면 부패와 발효는 모두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하는 현상이다. 다만 그 현상으로 발생한 유기물이 인간에게 해로운가 유익한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IT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즉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과거에는 코볼(COBOL)이라는 언어가 있었다. 사무용 프로그램들이 모두 이 코볼(COBOL)로 개발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라진 프로그램밍 언어이다. 만약 아직까지도 코볼 기술만 가지고 있는 엔지니어가 있다면 그는 어디서도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IT 기술은 시간이 지날 수록 부패해 간다. 새로운 IT 기술로 바꾸지 않으면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진다.

그렇다면 데이터는 어떤가?
데이터는 쌓이고 쌓여서 그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아내면 그것은 정보가 된다. 가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데이터가 패턴을 갖게되면 그것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게된다.
세계 최고의 기업 구글이 왜 그토록 검색엔진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수집했겠는가?
왜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공짜로 제공하면서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모았겠는가?
구글은 데이터가 쌓이면 거기서 정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보가 될 정도의 패턴을 찾아내려면 오랜 시간에 걸쳐서 수집된 데이터가 필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더라도 시간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수집된 데이터는 그 시간에 따라서 가치가 올라가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내가 데이터는 부패되는 것이 아니고 발효된다고 표현한 것이다.


서일농원에서 시작해서 IT 분야의 데이터 가치로 얘기를 전개한 것이 좀 비약이 있을 수 있지만 "데이터에 시간이 추가되면 무시할 수 없는 가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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