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광고는 일본의 어린이 재단에서 제작한 광고로 한 동안 인터넷에서 유명했었던 광고이다. 만약 못 봤다면 꼭 시청하길 바라고, 봤더라도 한번 더 시청하기 바란다.
광고 내용은 학교에서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그림을 그리라고 얘기한다.
아이들은 저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한 아이가 계속해서 도화지 전체를 검정색으로만 칠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걱정된 선생님은 엄마 아빠에게 얘기하게 되고, 엄마 아빠는 아이가 걱정되어 정신병원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다.
하지만 의사들도 이유를 알지 못하고 결국 아이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이는 그곳에서도 계속해서 도화지에 검정색만 칠한다.
그러던 어느날 선생님은 결석한 아이의 서랍에서 퍼즐 조각을 발견하고, 간호사 또한 아이의 그림이 서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결국 선생님과 의사들은 그 아이의 그림을 체육관에 모두 펼쳐놓게 되고, 거기서 커다란 고래의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제일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이 자막이 나온다.
'아이의 꿈을 북돋아 주려면 당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세요.'
이 광고를 처음 보고나서 너무나도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내 아이의 상상력을 부모라는 권위로 교육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없애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다.
이 광고의 어른들도 그림은 당연히 도화지 안에 들어가도록 축소해서 그려야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이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까지 한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믿는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의심해봐야한다.
여러분이 IT 쪽에서 일하고 있다면 쿼티(Qwerty) 자판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지금 여러분이 사용하는 키보드의 자판 배열이 쿼티 자판배열이다.
쿼티(Qwerty) 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자판의 왼쪽 상단의 영어 글자 6개를 연속으로 타이핑하면 나타나는 단어이다.
그런데 현재 전세계적으로 90% 넘게 사용하는 이 키보드의 자판배열이 어떻게 정해졌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타이핑을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나 또한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의 워드프로세스가 나오기 전에 사람들은 타자기라는 것을 사용하였다.
내가 어렸을 때 상고 다니는 누나가 타자기로 타자 연습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타자기는 쇠막대가 반원으로 배치되어 키보드를 칠 때마다 하나씩 나와서 정 가운데의 리본을 때리면 종이에 리본에 뭍어있는 잉크가 종이에 인쇄되는 방식으로 동작한다.
그런데 문제는 자판를 너무 빨리 치게되면 앞에 친 쇠막대가 원래 위치로 돌아가기 전에 새로운 쇠막대가 올라와서 두 막대가 엉키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했던 타자기 발명가인 미국인 크리스토퍼 라탐 숄스(1819~1890)는 자주 사용하는 글자를 가장 멀리 배치하도록 자판은 구성하게되고 그 배열이 쿼티(Qwerty) 자판 배열인 것이다.
결국 쿼티(Qwerty) 자판은 너무 빠른 타이핑을 방지하기 위해서 가장 불편하게 만들어진 자판 배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자판 배열을 컴퓨터가 발명되면서 그대로 키보드에서 사용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이 키보드 자판배열을 바꾸려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거스트 드로락 박사는 쿼티(Qwerty) 자판의 문제를 인식하고 더 효율적인 드보락(Dvorak) 자판을 제안하였고, 쿼티(Qwerty) 자판보다 더 효율적인 자판이라는 것을 인정받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쿼티(Qwerty) 자판을 밀어낼 수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컴퓨터의 키보드를 처음 만들 때 타자기 자판배열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라는 믿음을 아무런 검증없이 받아들이는 바람에 지금도 전세계 컴퓨터 사용자들은 가장 비효율적인 자판의 키보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잘못된 믿음은 우리의 자유를 가두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코끼리 조련사들은 어린 코끼리를 잡아와서 말뚝에 줄로 묶어 놓는다고 하다. 그러면 몇 일간 어린 코끼리는 말뚝에 묶인 줄을 끊으려 발버둥을 친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포기하게되고 더이상 묶인 줄을 풀려하지 않게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그 코끼리가 커서 그런 줄은 쉽게 끊을 수 있는 힘이 생겨도 여전히 자신은 그 줄을 끊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코끼리는 자신의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서 족쇄를 영원히 풀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혹시 지금 나는 저 코끼리처럼 자신의 잘못된 믿음에 갇혀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들을 다시 한번 의심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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